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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숨길 수 없는 ‘목소리 지문’ - 하리하라의 영화와 과학 이야기 (30)

평화로운 주택가, 국방성에서 일하는 왓슨 대위의 아내와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납치범은 이들을 인질로 잡은 채, 아버지를 협박하여 국방성의 특별 계좌에서 거액의 돈을 빼내 익명의 해외계좌로 입금할 것을 요구한다. 

지능적인 범인은 웹캠으로 화상통화를 연결해 인질로 붙잡힌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위가 자신의 말을 어기지 못하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대위는 범인의 말대로 행동함과 동시에 사건 해결을 위해 작은 쪽지를 비서에게 전해 자신이 협박받고 있음을 해군 수사대인 NCIS에 알린다. 

제보를 받은 NCIS는 수사에 착수하지만, 범인이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까지 변조한 덕에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황. 사건이 진행되면서 범인은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풀어주지만, 아이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아도 남들이 듣지 못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며, 자신이 들을 소리의 주파수를 헤르츠(Hz) 단위로 구분해 기억할 수 있는 천재소녀. 아이는 경이로운 청력으로 자신이 갇혀 있던 곳 주변의 소리를 구분해내고, 이로 인해 감금 장소가 드러난다. 

- 해군수사대, NCIS 시즌2의 한 에피소드 중에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소리’입니다. 범인은 ‘목소리’를 통해 왓슨 대위를 조종하지만, 그 목소리는 기계로 변조된 가짜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는 뛰어난 청력을 통해 자신이 감금되었던 곳에서 나던 소리들을 기억해내고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수사대는 감금 장소를 찾아냅니다. 오늘은 이 ‘소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다, 목소리 지문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음성을 이용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성(音聲, voice)이란 사람에게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리가 목에서 나온다고 알고 있지만, 음성은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를 목의 성대와 입과 코 등의 공간을 통과하면서 조정을 받아 생겨납니다. 특히나 성대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먼저 성대의 길이에 따라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집니다. 성대가 길고 굵을수록 저음이 나고, 짧고 가늘수록 고음이 나옵니다. 어린이(성대 길이 평균 0.9cm)나 여성(1.5cm)에 비해 남성(2cm)의 목소리가 낮은 것은 변성기를 거치면서 성대가 길고 굵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사회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던 시절에는 높고 맑은 음색을 유지하고자 변성기가 되기 전에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가수)를 만들던 잔인한 풍습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대가 목소리의 높낮이만 조절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마다 개인차로 인해 성대의 모양, 떨림, 진동수는 제각기 다르기 마련인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성대에서 진동수가 다른 여러 가지 소리가 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의 소리들이 한데 합쳐서 동시에 공명하게 되는데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는 공명을 거친 소리입니다. 사람마다 만들어내는 목소리의 진동수는 저마다 다르고, 어떤 진동수의 소리가 겹쳐져서 공명을 만들어내는지도 저마다 다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 다른 목소리를 가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는 마치 지문처럼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낸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특징적인 음색은 숨길 수가 없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목소리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목소리는 개인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목소리를 이용해 신원 확인을 하는 음성 인증 시스템도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구요. 이렇게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은 사람을 구별한다는 점에서는 편리하지만, 신원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오히려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목소리를 변조하기도 합니다.

혹시 헬륨 가스가 든 풍선에서 나오는 기체를 들이마신 채 말한 적이 있나요? 헬륨 가스를 마시고 난 뒤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꽥꽥거리는 듯한 높고 우스꽝스러운 목소리가 납니다. 아무리 멋진 저음을 가진 남자들도 헬륨 가스를 마시게 되면 순간적으로는 높고 꽥꽥대는 소리가 나게 되지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헬륨 가스를 마시고 말을 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음성은 헬륨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 때 헬륨은 주로 질소와 산소로 구성된 대기보다 밀도가 작기 때문에 소리의 전달 속도가 더 빨라지고, 공명하는 진동수가 높아져서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가 나는 것이죠. 

보통 목소리 변조시에도 이런 기법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때는 헬륨 가스가 아니라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긴 한데, 기계를 이용해서 공명 진동수를 높이면 원래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타난다고 해요. 

가청 주파수의 10대 전용 벨소리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성대의 진동이 공기를 타고 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게 되면 폐에 있던 공기가 올라오면서 목을 거치고 성대가 떨리면서 입 주위의 공기로 이 진동을 전합니다. 그러면 공기가 매질이 되어 성대의 떨림을 주변으로 전파하게 되고, 이 공기의 파동이 귀에 닿게 되면 고막을 떨리게 하며, 다음에는 청신경이 이 자극을 받아서 소리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할 수 없습니다. 성대가 떨리지 않거나, 공기를 비롯해 소리를 전달해줄 매질이 없거나, 고막이나 청신경이 손상되었거나 하면 소리를 만들지 못하거나 전달이 되지 않거나 인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지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소리가 있지만, 사람의 귀는 모든 것을 다 듣지는 못합니다. 사람의 귀가 들을 수 있는 음역은 보통 20~2만Hz 정도로, 이를 ‘가청 주파수(audio frequency band)’라고 한답니다. 가청주파수 대역을 넘어선 소리는 존재하기는 해도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즉, 아주 낮은 소리나 아주 높은 소리는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죠.

가청주파수 대역은 개인차가 존재하는데, 대개는 나이에 영향을 받습니다. 보통 나이를 먹게 되면 높은 주파수 대역대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게 되는데, 평균적으로 20대가 되면 1만8천Hz 이상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점점 들을 수 없는 높은 음역의 폭이 나이와 함께 비례해서 많아져서, 30대는 1만6천Hz, 40대는 1만4천Hz 이상, 그리고 50대는 1만2천Hz 이상의 높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모 휴대전화 벨소리 업체에서는 높은 음역대의 소리가 나이든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응용하여 ‘10대들만 들을 수 있는 휴대폰 벨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교실에서 이 벨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은 벨소리에 반응하는 반면, 선생님은 이를 전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착안해서 만든 것이죠. 

이처럼 어린 시절에는 청각이 민감한 것이 특징이지만, 최근에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청력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아, 10대이면서도 10대들의 벨소리를 못 듣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청력 역시 한 번 소실되면 다시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먼저 청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랍니다. 

눈으로 보는 소리의 세계

지금까지 인간에게 의미있는 소리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 범위 내에 있는 소리를 뜻합니다. 가청주파수 너머에 존재하는 ‘초음파’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존재라 오랫동안 별다른 의미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초음파는 비록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에서 많은 역할을 차지하는 존재가 되었답니다. 

건강검진을 받거나 임산부들이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게 되면 초음파 검사를 하곤 합니다. 진단할 부위에 차가운 젤을 바르고 플라스틱 주걱처럼 생긴 기계를 문지르면 순식간에 화면에 내장기관이나 태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즉, 이 기계를 사용하면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도 그 안에 든 내장기관이나 태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마술처럼 피부 너머 안쪽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장본인이 바로 초음파입니다.

초음파는 말 그대로 음파의 일종이지만, 주파수가 너무 높아 인간은 들을 수 없는 대역대의 소리를 말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2만Hz인데 반해, 병원에서 진단용으로 사용하는 초음파는 200만~1천500만Hz 정도의 엄청난 고주파입니다. 

보통 초음파는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있는데, 초음파를 매질에 통과시키게 되면 매질의 밀도에 의해 속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때 초음파는 매질이 단단하고 딱딱할수록 빠르게 통과하고, 매질이 느슨하고 부드러울수록 천천히 통과합니다. 

인체 내부로 초음파를 통과시키면, 뼈처럼 단단하고 밀도가 높은 곳은 빠르게, 그리고 내장기관처럼 밀도가 낮고 부드러운 곳은 느리게 통과합니다. 초음파 기계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서, 인체에 초음파를 주사하여 빠르게 통과한 부위는 흰색, 느리고 통과한 부위는 검은색을 띄도록 시각적으로 변형시키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음파’의 일종인 초음파를 몸 속으로 통과시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피부 속 깊숙한 곳의 모습을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이죠. 최근에는 초음파 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내장기관이나 태아의 모습을 3D 입체 화면으로 보여주는 기술도 개발되었습니다. 귀로 듣는 것으로만 알았던 소리를 이용해 눈으로 보는 사진을 만들어 내다니, 참 신기한 일이지요. 

이 에피소드는 눈먼 소녀가 가진 예민한 청각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소리는 빛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경험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소리는 때로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하고 넘어갔던 많은 것들을 계속해서 우리 귀에 속삭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눈을 유혹하는 현란한 빛들과 작은 소리를 묻히게 하는 시끄러운 소리 덕에 잊고 있었던 우리 주변의 소리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 에피소드였답니다.